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를 처음 보면, 누구나 드래곤이 적이라고 생각한다. 날아다니고, 불을 뿜고, 마을을 파괴하니까. 하지만 영화가 한 발짝 안으로 들어갈 때쯤 우리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얘네, 나쁜 애들이 아닌 것 같다. 히컵이라는 이름도 어딘가 모르게 덜컥거리는 소리를 내는 이 소년이, 세상의 규칙을 조금씩 어긋나게 만든다. 드래곤을 쓰러뜨리려던 히컵은, 용 대신 ‘자신이 배운 세계’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이 ‘두려움’이라는 걸 깨닫는다. 드래곤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의 뿌리를 찾아내고 마음의 울타리를 걷어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액션도, 판타지도 아니다. 한 소년의 내면 성장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용은 괴물이 아니라 거울이었다
드래곤은 이 영화에서 단지 무서운 생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고정관념, 편견, 그리고 세대 간의 불통을 상징한다. 특히 ‘투슬리스’는 단순한 파트너를 넘어서 히컵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날개가 있지만 날 수 없는 그, 무기는 있지만 공격하지 않는 그. 마치 세상 속에서 방향을 잃은 누군가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영화는 말한다. "용을 길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용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상대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알아보려 하지 않는 존재다. 그런데 작은 관심, 낯선 시선, 낮은 자세 하나가 놀라운 변화를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용’과 친구가 된다. 그건 어쩌면,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만든 벽, 우정이 허문 하늘
히컵과 아버지, 드래곤과 인간, 용사와 겁쟁이. 이 영화 속 모든 관계는 ‘벽’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벽을 허무는 방식이 결코 화려하거나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천천히, 작게, 반복적으로 다가가면서 만들어진다. 두려움은 처음엔 그 벽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 갇힌 우리 스스로를 더 답답하게 만든다. 결국 히컵은 날개를 가진 투슬리스를 통해, 자신에게도 ‘하늘을 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걸 믿지 않았던 아버지도, 그 벽을 허물게 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우정’이라는 단어를 단순한 감정이 아닌, 세상을 바꾸는 능력으로 그려낸다. 그것도 아이와 용, 그 둘의 무언의 대화를 통해서.
총평: 날아오를 수 없던 이들에게 바치는 이야기
《드래곤 길들이기》는 단순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그것은 오해와 편견, 두려움과 화해, 그리고 날개를 숨긴 모두를 위한 영화다. 투슬리스는 귀엽고, 히컵은 의외로 강하고, 그 둘의 관계는 묘하게도 부모와 자식, 친구와 친구, 혹은 나와 나 자신으로 읽힌다. 시각적으로는 아름답고, 서사적으로는 깊고, 감정적으로는 폭발적이다. 이 영화는 큰 소리를 내지 않고도, 가장 큰 울림을 준다. 비행이 아니라, 비상의 이야기. 드래곤을 길들인 게 아니라, 우리를 해방시킨 영화. 그리고 그 여운은 오래 남는다. 날 수 없다고 믿었던 이들에게, 다시 하늘을 꿈꾸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