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살인자 리포트 영화 리뷰

by 고고쏭 2025. 9. 10.

영화 살인자리포트

 

“사람을 죽였다는 건, 단지 목숨을 앗아간 게 아니야. 누군가의 시간을, 미래를, 존재의 이유를 지워버린 거야.” 《살인자 리포트》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살인의 정의를 재구성하고,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제3자의 시선에서 ‘죽임’이라는 행위의 감정적 후폭풍을 따라간다. 시체보다도, 칼보다도 무서운 건, 보고서 한 장일지도 모른다. ‘살인자’라는 단어가 붙은 보고서에는 사람이 없다. 감정이 없다. 의미가 없다. 하지만 영화는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살인자 리포트, 숫자 아닌 이야기

《살인자 리포트》는 제목 그대로, 수많은 살인 사건이 통계로만 존재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보고서, 통계, 그래프. 하지만 영화는 그런 숫자 뒤에 가려진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본다. 주인공은 형사가 아니다. 피해자 가족도 아니다. 그는 ‘살인자 보고서’를 분석하는 국립기관의 기록 요원이다. 그의 일상은 수많은 살인 사건의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하나의 리포트를 다시 읽는다. 그리고 그 리포트 속 가해자가 자신과 동창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계적인 보고 작업은 감정의 소용돌이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 애가 그런 짓을 했다고? 그런 얼굴로?” 영화는 이 질문 하나로 시작해서, 기억, 관계, 죄책감, 그리고 사람이라는 복잡함을 천천히 파고든다.

기억의 흔적, 진실의 해체

기억은 늘 불완전하다. 그리고 영화는 이 불완전한 기억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는 구조를 선택한다. 살인자 리포트의 중심은 ‘팩트’가 아닌 ‘기억’이다. 과거의 친구였던 가해자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보지 못한 또 다른 모습이 있었을까? 주인공은 보고서를 통해 그의 과거를 다시 조립한다. 사진, 학교 생활기록부, CCTV, 메신저 대화, 심지어 졸업 앨범까지. 수많은 조각을 맞춰가는 여정은, 결국 진실이라는 단어의 허상을 증명한다. 영화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확신의 부재 속에서 자라는 감정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악인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언제든 그 선을 넘을 수 있는가?

감정의 보고서, 누락된 진심

영화 후반부, 주인공은 살인자 리포트를 폐기하려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그는 그럴 권한이 없다. 보고서는 공공 기록이고, 객관적인 정보로 구성돼야 한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이 보고서에는 사람이 없다. 감정이 없다. 마음이 없다.” 그 대사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은 총성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뉴스, 범죄 기사, 살인 통계. 그 안에는 사람이 빠져 있다. 감정도 빠져 있다. 《살인자 리포트》는 그 빠진 것을 복원하는 감정의 보고서다. 고요하고, 날카롭고, 잔인하게 슬프다. 주인공은 끝내 자신의 감정을 담은 비공식 보고서를 남긴다. 그건 아무 기록에도 남지 않지만, 영화를 본 사람의 기억엔 오래 남는다. 인간의 복잡함을 숫자로는 다 셀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은 몰랐다.\

총평

《살인자 리포트》는 폭력적이지 않다. 잔혹한 장면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스릴러보다 마음이 아프고 무섭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고, 뉴스 속 숫자들이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이 영화는 보고서가 아니라 질문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감정이란 왜 이렇게 지워지는가.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진심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가. 이 영화가 말하지 않은 그 감정들 사이에서, 관객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의외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 우리는 모두, 보고서에 적히지 않은 존재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