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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청춘·방언·기억의 향수) 감상 리뷰

by 고고쏭 2025. 9. 26.

 

《폭싹 속았수다》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폭싹’이라는 단어는 제주 방언으로 ‘완전히, 통째로’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시청자의 마음을 폭싹, 그대로 집어삼킨다. 중심엔 두 주인공이 있다. 청춘의 시작점에서 마주친 이들은 제주도의 햇살과 돌담 사이를 지나며,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하고, 또 놓친다. 청춘이라는 말은 늘 반짝이고 아름답게 들리지만, 이 드라마 속 청춘은 아프고 고되고 때론 참담하다. 공부를 포기하고, 고향을 떠나고, 말하지 못한 마음을 삭이고, 시대의 무게 속에서 선택조차 빼앗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근거린다. 사랑은 예측할 수 없고, 현실은 예쁘지 않지만, 순간순간 피어오르는 감정의 농도는 진하다. 이 드라마는 말한다. “청춘은 늘 실수투성이고,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고.

제주 방언이 말하는, 말보다 깊은 마음

《폭싹 속았수다》를 특별하게 만든 가장 큰 힘은 바로 방언이다. 제주어는 단지 말이 아니라, 감정의 결이다. “혼저 옵서예” 한마디에도 애틋함이 있고, “속았수다”라는 말에는 다정한 체념이 숨어 있다. 이 드라마는 단지 제주를 배경으로 삼은 게 아니다. 제주라는 ‘언어의 섬’을 제대로 활용한다. 등장인물들의 말투는 투박하면서도 정겹고,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도시 말처럼 딱딱하지 않고, 그렇다고 시골 말처럼 느슨하지도 않다. 중간 어딘가에서 마음을 간질이는 리듬으로 흐른다. 특히 어르신 캐릭터들의 대사 하나하나는 어쩌면 시 같은 말장난 같고, 또 어쩌면 삶의 철학처럼 무게가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며 종종 “이건 번역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언어가 아니라 정서로 받아들여야 하는 말들. 우리는 그 말들을 들으며 어쩐지 울컥해진다.

기억은 흐려지지만, 향수는 더 짙어진다

드라마는 시점을 오가며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과거의 청춘이 현재의 노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시간을 얼마나 다르게 바라볼까. 기억은 흐릿해져도, 어떤 순간은 뚜렷이 남아 있다. 드라마는 그런 장면을 수없이 만들어낸다. 첫 입맞춤, 다투고 돌아선 길, 어머니의 손길, 우연히 마주친 그날의 하늘.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든다. 드라마 속 노년의 주인공은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단지 그 시간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시청자인 우리에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나도 누군가와 저렇게 웃고 울었던가?’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같은 질문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건 단지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번쯤 겪었고 또 놓쳐버린 이야기다.

총평: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의 노래다

《폭싹 속았수다》는 처음엔 ‘힐링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다. 제주도 배경, 방언, 풋풋한 청춘. 하지만 이건 쉽게 소비될 수 없는 드라마다. 감정은 뾰족하고, 전개는 무작위적이며, 대사는 시 같고, 침묵은 더욱 많은 걸 말한다. 누군가는 이 드라마가 느리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이 늘 빠르게만 흘러가진 않듯, 이 이야기도 자신의 속도로 시간을 따라간다. 화면의 색감 하나, 배우의 표정 하나, 말 한마디,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강한 울림을 만든다. 결국 《폭싹 속았수다》는 드라마라기보다 기억 속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편지 같고, 한 줄의 오래된 일기 같다. 당신의 청춘이 지나갔다면, 이 드라마는 다시 그 시절을 불러낼 것이다. 아직 청춘이라면, 언젠가 돌아볼 당신에게 편지를 써줄 것이다.